엄청나게 도발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라니. 기가차서. 말한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리고 뒤돌아보며 혼자 되뇌이는 것이리라. 과연, 그럴까?

어느 주인공 넷이 우연히 이리저리 둘러 선후배 사이가 된 철주(최재원)가 바를 오픈한다는 소식에 다들 개업 축하명목으로 모인다. 가만봐도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릴까 싶은 유나(엄정화)와 민재(박용우) 부부. 딱 봐도 졸라 티꺼운 얼굴로 니들이 결혼이 뭔지 알아하고 폼잡고 앉아 있는 영준(이동건)과 소여(한채영) 부부.

봐도 억지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소여씨 부부야 뭐 그럴다고 치자. 어차피 돈 많은 것들이 판돈 불리려고 짜고치는 결혼이었으니 "애정이 밥먹여주냐?" 케이스일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돈 쌓아 놓고 살아가는 부자들이 그럴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 같은 빈자들의 좁은 시각일테지만 말이다.) 문제는 유나씨 부부다. 겉으로 보면 유나네 집은 딱 대한민국 중간쯤 위치한 가정집을 연상케 한다. 성공을 바라보는 커리어 워먼 유나, 그의 열심으로 남부럽지 않은 지위에 오른 민재. 민재는 늘 져주는 스타일이다. 그도 그럴것이 주위가 다 알아주는 소문난 애처가이기 때문이다. 유나는 그런 민재를 자신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해 준 은덕을 알아야 한다는 투로 까분다. (부부의 주도권 싸움에서 이기고 지고는 없다. 까부냐 안 까부냐만이 존재할 뿐이다.) 삶이 전투장인 유나에겐 남편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 전우일 뿐이다. 싸나이 민재는 군인정신이 모자란다. 매사에 물탄듯이 둥글둥글하게 처신한다. 자존심 강한 유나는 그런 남편이 조금 밉다. 좀 더 위를 보며 확실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민재를 재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바가지정도야 사람 좋은 민재가 고깝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아내가 어줍잖게 영어를 섞어 쓰든 좀 터프해지라고 바가지를 긁던 유나는 자신의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유나부부와 관객 뿐인다. 정작 어떠한 충격이 그들의 삶에 부딪쳐 왔을 경우 그들이 그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민재는 결국 유나를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잔소리가 기실 몹시 듣기 싫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유나의 입장이다.

유나의 입장?
제목을 따로 달고나니 우습기도 하다. 입장이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코메디로 일관한 빠주인 철주또한 나름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을터다. 유나만 따로 입장을 가질 권리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 그녀는 일단 선을 넘지 않았다.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실로 집요한, 돈 많은 젊은 킹카의 온갖 유치한 사탕발림을 견뎌냈던 것이다. 그것은 자랑도 뭣도 아니다. 다만 어떤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었나 싶다. 약속.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누구에게 따로 배우지 않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랑할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곳이 내게 주는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유나는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문다. 겉보기엔 넷 중 가장 강할 듯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 어떤 캐릭터보다 여렸던 것이다. 민재가 그를 사랑하기에 죽어도 떠나지 못한다고 대쉬했던 것이지만 어쩌면 본심은 유나가 민재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녀석이 떠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와 같은 기본적인 불안과 강박은 그를 옹골찬 여자가 되게 만들었으며 결과론적으로 가장 시끄럽고 눈꼴사나운 캐릭터의 소유자로 묘사할 수 밖에 없게 자신을 재촉한 것이 아닐까. 포장지가 요란 할 수록 내용물이 의외로 수수할 수가 있는 법이다.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물이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더 정갈한 마음을 담기보다 화려한 포장지를 선택하는 법이다.

평범한 남자인 민재가 그런 유나의 복잡다감한 내면을 바라보기엔 인간세상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이 들 두 쌍의 부부가 어떻게 찢어져 어떻게 재결합하든지간에 결과는 뻔하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랑도 변한다. 세월은 모든 사물을 마모시키고 절멸시킨다. 인간은 그것에 예외가 수 없다. 사랑하는 감정이 억만년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하며 유한한 짐승이 추구하는 어떤 형이상학적 몸짓도 결국엔 그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테레오 타입에 주의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 이어야 한다. 모르겠다. 는 곤란하다. 모른다면 우리는 결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던가.

2007년 최고의 성인용 한국 영화로 기억될 듯. (2007년의 끝은 아직 멀었지만서도...)



뱀다리



블로그 이미지
Blog Image
다지지마닷컴

내가 알고 싶은 세상의 모든 것, 다지지마닷컴

by 버트
프로필 버튼
프로필 상세보기
블로그롤 정보

카테고리

  • 160449
  • 1971035
Tatter & Media textcube get rss

다지지마닷컴

버트'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버트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버트'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