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호는 승룡이에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한다
바보가 주는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처지는 인간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바보가
분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보아닌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르는 : 하지만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내가 스스로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일게다.
이 세상은 각박하다못해
살벌하다.
바보 아닌 작자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선생질을 해대는 통에 평균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늘 피곤하다. 차라리 바보가 되고 싶다거나 또는 바보를 놀리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어진다. 그게 요즘의 삶이다.
바보가 등장하는 영화가
(사실
바보라는 단어를 바보 아닌 사람사이에서는 농담식으로 들리지만 실제 바보라고 불리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틸선생이 속한 업계에선 정신지체라고 부른다. 약어로 엠알 M.R.
이며
원어는 mental retardation다. 스테이지 별로 5단계가 있다는 등등의 상식까지야 구태여
알
필요 없겠지만) 비장애인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통용되는 점은 참 면구스러운
경우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좌절을 보면서 그들만의 쾌락을 얻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비장애인의 이런 행위들은 참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때가
적지 않다.
도대체 장애를 갖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배울점은
무엇인가. 그게 강풀의 만화영화를 스크린에 옮긴 핵심이리라. 장애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대적인 우월감이 어째서 비장애인의 비참한 삶 앞에서 흔들리게 되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 아닌가.
비장애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낙오되거나 자신감을 잃은 나약한 인간들에게 장애인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며 다시한번 삶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는 영화를 나는 그래서 무서워한다. 이런 영화를 보고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벗겨졌으면 하는 순진한 바람이 아쉬운 인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값싼 눈물 몇푼 흘리고 나서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의기투합해 자신의 동네에 들어서기 위해 준비중인 수 많은 장애인 수용 또는 교육시설의 입주를 반대하기 위해 철야농성을 계획하는 부지기수의 비장애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진정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자신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서 느끼려 들지말자. 우리가 위안을 얻어야 할 곳은 그들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창조해 낸 세상, 바로 그곳일 뿐이다. 더 이상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위안거리로 전락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누도 잇신이 그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로맨스 또는 그들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만큼 비교적 공평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영화가 아쉽고 또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