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사마가 병이 나셨다.
전주부터 감기와 싸우느라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2박3일을 강행군하다보니 귀국한 날
급성중이염 진단을 받았다. 귀를 포함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틸사마의 갸냘픈 목소리가
나를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기온차는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차가운 기가 서울보다
남 달랐던 도쿄의 습한 날씨가 한 몫 한데다가 비행기 이착륙시 귀에
심한 무리가 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병원에서는 감기, 과로 따위로 인한
급성 중이염으로 진단.
나는 감기, 과로로 인한 단순한 몸살로 진단.
틸사마 본인은 버트가 일본에서 말 안듣고 자기 속을 꽤나 썪여서
홧병이 난 것으로 자가진단.
병원장 말로는 약물처방으로 통증은 하루, 이틀이면
바로잡히겠지만, 중이의 치료는 최대 두 달 가까이 상태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작년 제천 국제영화제 때도 둘 다 심하게 아파 컨디숀이
엉망이었음을 감안할 때 다음 여행을 떠나기전에는 굿이라도 성대히 열고 출발해야 할
것같은 예감.
엎친데 덮친격으로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바로 출근해야 하는 딱한
틸사마.
쾌유를 빌어주소서!
몸 아프지 마세요! 틸사마! 흑흑흑
그렇다면 버트씨의 여행 후유증은 미미한가.
우선 막무가내로
깨우친 일어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내가 할 줄 아는
일어는 일본 드라마를 보며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전부다. 이른 바 문맹이다.
말은 막상 써보니 그럭저럭 통하는데 히라가나나 익숙한 한자 이외의 가타카나로만 된
간판은 전부 때려 맞추어야 했다는 아픔이 있었음을 시인한다.
덕분에 두
번의 실수를 했다. 두 개의 케이스 모두 지하철 표를 잘못산 것.
물러터지게 한국적 지하철시스템에만 익숙한 인간의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다보니 동행인에게 날선 모습을 보여준 것을 사과해야 하겠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무리하면서 무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가 주위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 이쯔모 이쯔모 무리시떼나이요~ 떼 간지. 데모 지쯔와 무리쓰룬데쓰떼. :(
신주쿠의 더러움. 미묘하게
습한 날씨. 지하철 문화의 기이함. 인사문화의 즐거움. 비즈니스 호텔의 협소함. 상대적으로
비싼 교통비를 체감 할 수 없는 화폐가치의 다름에서오는 어지러움. 경찰 복장의
유치함. 늦은 밤 숙소에서 테레비를 켰을 때 반 이상 알아들을 수
있음에서 오는 신기함.
이번 여행을 계기로 해서 가장 큰 후유증은
아침에 일어나 옆을 보면 이제 더 이상 틸사마가 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사실은 생선 몇 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인간만을 기준으로 볼 때) 들어 와 불을 켜니 새삼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게 되었다. 낯 선 곳에서 오두방정을 떨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잘난 일어따위를 브로큰하게 지껄이는 것도 결국 내 옆에 누군가
응원을 해 주는 사람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나 혼자
왔으면 나는 훨씬 일본사람과 대화를 적게 했으리라.
내가 틸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진정한 이유는 그와 함께 24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여행의 목적이자 최종 결론이며 여행담의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