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男과 연애상담은 역시 무리

일쌍 2008/04/04 18:28 Posted by 버트
내가 좀 까칠한가보다, 인간말종이라기 보다 정 없이 자란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다. 늘 그렇지만 까칠한 사람들의 특징은 잘 되면 내 탓이오, 궁지에 몰리면 지나가는 삼룡이 탓인게 삶의 모토라는.

알다시피 여기는 네이트 온.

- 어디야?
- 카페 아르띠지아노.
- 뭔데 그게?
- 말 그대로 카페.
- 뭐 마시는데.
- 블루베리 아이스드 라테.
- 부자네.
- 새삼스럽지도 않아.


앞 좌석에 앉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둘은 아무것도 안 시키고 한 시간째 공부중이다. 뻔뻔한건지 요즘 트렌드인건지 구별이 안가. 당췌.

- 물어봐도 돼?
- 곤란한 질문만 아니면 뭐.
- 내 여자친구 애정문제.


빌어먹을 110% 곤란한 질문이잖아!

- 말해보라는.
- 여자가 있어요.
- 여자가 있다.
- 내 친구에요.
- 네 친구다.
- 이봐요?
- 응?
- 일일이 반복적인 대답을 삼가해 줄래요? 집중이 안되요!
- 아.


곤란한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곤란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아...

- 어디까지 했지요?
- 여자가 있다.
- 그래요 여자가 있어. 아이는 내 친구에요. 문제는 빚이 좀 있다는 거에요. 꽤 되어요. 아마도 뉴아반테 차 값 정도일테지요. 암튼 그 애 빚도 아녀요. 집 때문이지요. 어쨌든 빚이 있는거에요.
- 누가? 네 여자친구가?
- 그래요. 그래서 아이가 고민하던 차에 여차저차해서 그런 말이 오고간 모양이에요. 자기 남자친구와도.
- 그런데?
- 문제는 며칠전이지요. 아 글쎄 남자쪽 누나인가가 문자메시지로 동생을 그만 만나라고 하더랍니다.
- 오호, 역시 빚 때문에?
- 100%
- 그렇군.


곤란해. 빚이라면 나도 이빠이야. 제길. 이 세상엔 왜 모두 빚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이리도 소수일까. 다들 빚에 찌들어 있어. 뿐만이 아니었어. 아, 심난해. 그래서 뭐야. 결국 헤어진거야? 빚 때문에?


- 아니요. 죽고 못살아요. 그 사건이후 남친을 잡아패니 실토했나봐요. 마마보이야. 어떻게 여자친구의 그런 사정을 집안 식구끼리 공유할 수가 있어요. 기가막혀.


어이 이봐. 나에게 속풀이 하려면 사람을 잘못 찾은 거야. 나는 까칠남이야. 세롼이보다 더하면 더한 놈이라구. 돗자리 잘못 깔았어. 다른 데서 상담을...

- 내가 멘토링을 해야 할 시간?
- 어때요?
- 우선 여자쪽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 남자는요.
-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게다가 네가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네 여친뿐이잖아. 그러니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선 코멘트 하고 싶지 않구나.


나는 2/3쯤 남은 블루베리 아이스드 라테를 마셨다. 뒷맛이 기묘한 커피다.

- 빚을 갚는 다는 것은 100% 자기 몫이야. 타인에게 짐을 지울수 없는 법이지. 게다가 결혼 하면 흐지부지 될지도 모르잖아. 곤란해. 그런 계산법은. 남친의 누나가 오지랖을 넓힌다고 해서 비난할 건덕지가 없어. 빚쟁이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네 여자친구니까. 만약 네 친구가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빚의 유무일 가능성만 존재해. 애초에 자신의 고민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감정뿐만이 아닐터였어. 어쩌면 일말의 이타심이 존재했을꺼야. 그 점을 시인하는 게 좋아. 자. 그렇다면 남자는 그게 부담스러웠다는 거겠지. 바로 지 누나에게 일러바쳤으니 말이야. 수다스러운 녀석일수도 있고, 정말로 고민스러웠을수도 있지. 네 여친은 그 날 이후 확실히 타인들에게 짐이 된거야. 돌아갈 없지. 애초에 자신의 빚을 탕감하면 결혼해 주겠다고 말한 편이 더 쿨했을지 몰라. 지금은 그도 저도 아니야. 빚은 그대로고 상황은 더 괴로워진게지.


나는 1/3쯤 남은 블루베리 아이스드 라테를 왼편 다탁에서 오른 다탁으로 옮겼다. 담배가 미치도록 피고 싶었다.

- 남자쪽은 내 알바 아니라는 말은 했지? 그럼 다시 네 여친으로 돌아가보자. 내 결론은 단순해. 빚을 갚아줄 남자를 찾거나 빚청산 후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편이 좋아. 그게 편해. 어디에나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결론이야. 마음에 들어. 사귐을 강요받을 필요도 없잖아. 액수를 들어보니 오랜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전혀 손도 못댈 금액이 아니잖아. 첨부터 빚을 지워줄 수 있는 능력남을 만나든지, 아님 빚을 스스로 지워버린 후에 연애를 시작하는 게 좋아. 그게 내 답이야. 솔루션이라기보다 내 생각일 뿐이야.


리턴을 치고 메신져를 보니 깜빡이는 커서가 오늘따라 더욱 조급해 보였다.

- 둘이 너무 사랑하는데 어째.
- 그게 무슨 상관이야.
- 상관있죠.
-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랑은 괴로운 법이야.
- 어떻게 사랑이 마음 편해요. 불편한 상황도 부지기수잖아요,


이럴줄 알았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있어다. 애초에 곤란한 질문을 던진 쪽은 너라고. 비난은 괴로워. 아, 퇴근하고 싶어.

- 미안하다.
- ......
- 그래서 나는 아무 여자나 사귀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흘려 보낸지도 몰라. 쿨한 여자만 찾아 오랜 세월을 허송세월했는지도.
- 쿨한 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아녀요. 좋은데 어찌 쿨할 수만 있나요. 징징대고 서로 보고 싶다고. 받고 싶은 것은 사랑인데.
- 미안, 그래서 내가 결혼 못하고 있는지 몰라.
-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맙소사.

- 따지지 말자. 나는 나일뿐이야. 나는 너희 삶을 대신 살지 못해.
- 좋아. 그럼 하나만 물어보지요. 비혼비혼 하는데 당신 여친의 생각은 알고나 있는건가요?


올게 왔구나. 나의 잘난 이론으로 나를 사귀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것이군. 애초에 대화를 할 때 여기까지 오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막상 당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아. 누군들 안 그럴까. 궁지에 몰리길 좋나하고 반기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 당신 여친님은 결혼할 생각을 갖고 있냐는 이야기야.


내가 왜 이런 사적인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 한심한 내 청춘이여.

- 내 여친이라. 지금 그 여자를 무척 사랑하지만 언제 헤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결혼은 헤어짐을 방해하는 요소잖아. 서류가 복잡해 진다구.


내가 말했지만 참 얄밉게 들린다. 이래서 까칠한 인간으로 낙인 찍히나 보다.

- 그렇군요.
- 응. 그래.

침묵.

- 이봐, 나 재수없지?
- 응 몹시 재수없어.
- 흠.
- 그런데 마음에 들어.
- 에?
- 그게 당신 다운 거니까. 당신이 가진 가치를 존중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나도 네가 무슨 말이 듣고 싶었는지 안다. 하지만 나는 얄미운 사람이라서 네가 맞장구 처 줄 내용을 국어책 읽듯이 리마인딩 하는 캐릭터가 아니란다. 나는 나니까.

- 어쨌든 나를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구나.


한 마디만 보태자.

- 하지만 내가 주장한 방금의 말은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거짓을 늘어 놓기도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엔 분명히 존재하거든.
- 그게 당신이라고?
- 글쎄.
- 아마도 당신은 멋진 연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점이다. 개똥같은 사상이나마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있는 내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그게 참 중요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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