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살아가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원거리 연애를 하는 인간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나같은 쫌생이들에겐 떨어져
있는
단하루가 천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 나와, 맛있는 것 사줄게.
- 정말?
- 응.
- 하지만, 자정까지 사장이 날 너무 혹사해서
점심 무렵 의정부로 갈 수 있을지가 의문.
- 그러게. 것도 그렇겠네.
나쁜 사장.
그냥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나와! 밥탱아.라고 말해주지
않는
것일까. 바보같은 틸사마같으니라고.
- 자?
- 응.
- 그럼
이따 잠깨면 전화해.
- 응.
나는 갑자기 만사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내일 이 맘때면 그가 이곳에 없을 것이다. 나는 헤어짐에
익숙한
인간들이 부럽다. 자식을 해외에 보내고 자신의 처마저 뒷수발을 위해 외국으로
보내
버리는 남자들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 기러기는 기러기일 뿐이다. 기러기
아빠는
자식의 안녕을 자신의 사랑에 저당잡히는 자가당착적 현실도피일 뿐이다.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해서
그 씨앗과 상대를 멀리 보내고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영화표를
죄다
취소하고 역으로 달려가 기차표까지 반환청구를 해 버렸다.
- 갈까?
- 오게?
- 응.
- 와!
- 그래, 지금 기차탄다.
창졸간에 일어난 해프닝이라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질 못했다. 낡은 지갑과
휴대폰뿐.
장장 30분이상 기차여행을 해야하는데 읽을거리가 없다는 것은 지옥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청량리 역 플랫폼 위에 자리잡고 있는 잡지 판매대에서 시사IN은
한
권 사버렸다. 영화잡지를 보려고 했는데 지불하고 보니 내 손엔 엉뚱한
잡지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거 참 나도 이제 완연한 아저씨인가.
후텁지근한
공기를 뚫고 낯선 역에 내려서니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그녀가 눈에
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10초간 혼자흔들기를 반복하다보니까 마침내 시선이 마주치고 그녀도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한다.
- 결정해.
- 뭘?
- 뭐
먹을래?
- 뭐가 좋을까.
- 내가 우리동네 맛집 두 개 적어왔어.
다 의정부역 근처야. 하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가서 선택하기보다 여기서 선택한
후 이동하는 편이 좋겠어.
- 뭐가 좋을까.
- 수육어때? 당신 며칠째 수육타령이었잖아.
- 수육잘하는데가
가차워?
- 버스로 겨우 몇 정거장인걸.
- 가자.
버스에
타서 핸드폰을 꺼내어 내게 내미는 그녀. 핸드폰 액정엔 맛집 정보를
적어
놓은 포스티잇이 붙어 있었다.
- 봐. 내가 애썼지.
-
아이구, 훌륭하시네요. 준비하시느라 고생많았시오.
- 히히히.
식사를 하고
근처
중앙시장을 산책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뛰었다.
- 와, 여기 빵집은 디따 옛날 스타일의
빵집이야.
- 빵 사줄까?
- 세 봉에 오천원이래.
- 싸네.
-
그럼 이거 싸가서 주말을 때울까?
- 그래라, 그럼. 내가 쏠게. 그
대신.
- 그 대신?
- 내가 없는 사이 바람피우면 안돼!
-
엣?
- 집에서 주말동안 꼼짝 않고 책만보고 빵만 먹고 있어.
-
하하하하.
- 알았지?
우리는 빵을 사가지고 사이좋게 나누었다.
그리고
근처 원두커피숍에 가서 커피와 밀크티를 마셨다. 그리고 기차를 탔다. 두
정거장
후 그녀는 내린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가 싫었다. 빵 따위를 주지
않아도
바람따윈 피우지 않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 * *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녀는 여전히 부재중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바람을 피우기는 커녕 보상으로 사준 빵조차 다 먹지
못했다.
나는 그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