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세상이지만 참 훌륭한 피플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이 나라에서 전혀 활성화되지 않은 기부 문화를 선도하는 몇몇 분들.
그들은
평생 모은 말 그대로 피땀어린 돈다발을 대학교따위에 투척
投擲 (나로선 이들의 행위가 기부라기보다 돈 다발을 던지는 모습에 투척이라는 단어로
이해한다) 해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길 기원한다. 평생 행상과부로
살아온 늙은 여성도 이름만 들으면 귀가 번쩍 뜨릴 서울의 유명 대학에
아낌없이 전재산을 기부하곤 한다. 대단하다. 기부할 돈은 커녕 유명 대학에 입학했다해도
낼 등록금조차 없는 가난한 인간에게 그것은 커다란 선행이라기보다 경이로움 그 자체다.
임영인은 신부다. 성공회 교회 신부. 성공회가 무엇 하는 집단인지 잘
알지 못한다. 줏어 들은 주접스런 지식을 더듬자면 영국의 어떤 머저리 왕이
카톨릭이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 열 받아 내친김에 급조했던 종교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뭐래도 좋다. 어쨌든 빈민 사목司牧을 오래했던 임영인이 이번에 그 경험을 토대로 서울역 광장에 불법 건축을
시도하고 (그래봐야 컨테이너지만) 그것을 다시 철거하려는 국가권력과의 짧은 한 판승부를 다룬다.
물론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그 수기는 맨 뒤에 작게 한 토막
소개되어 있다. 나머지 대개의 에피소드는 서울역 등을 전전하는 노숙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할애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가 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소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짧지만
서스펜스가 느껴질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상쾌한 서울역 광장에 지져분한
몰골의 행려병자나 노숙인을 위한 진료소 따위를 만들어 주변 환경을 저속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임영인 신부가 어느 날 서울역광장에서 007작전을 불사하는 치밀한 준비로 가건물을
세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왜 저 불쾌한 노숙인들은 멀쩡한 팔다리로 일을
하지 않고 매일 소주나 입에 털어 넣을 궁리만 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아쉽지만 이 나라는 이들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심지어 죽은 노숙인을 들것이 아닌 물건을 운반하는 바퀴달린 구루마로 실어 나를 정도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정말로 어렵게 과거를 보낸 성공한 기업인들 역시 이들에게 무관심하기엔 마찬가지이다. 기부는 기부가 빛나는 곳에서만 기부일 뿐이다. 자신이 못배운게 한이라고 한다. 그들의 선행은 노숙인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피플들에게만 유효하다. 서민이나 극빈층에게는 먼 산 바라보기일 뿐이다. 어째서일까? 왜 어렵게 번 돈을 쓸데없이 대학교 따위에 기부할까? 그것은 물론 그들이 그들의 말처럼 무식하게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을 쓰는 방법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의 기부가 계속되는 한 정부는 오히려 뒷 짐을
지고 교육 공영화를 느긋하게 지켜 볼 따름이다. 대학교는 결국 세금으로 운영해야
하고 그 막대한 세금은 부를 세습하는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어렵게
번 돈을 쉽게 버는 인간들의 의무로 가름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무식한 짓거리다.
피땀 흘린 돈을 그렇게 쓸 데가 없는가? 주변을 둘러봐라. 신부 임영인이
서울역 광장에 콘테이너 하우스를 만든 이유는 주변에 그럴듯한 작은 건물 하나에
입주해 마음놓고 노숙인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뛸 때로 뛴
거대한 주변 땅값은 정작 빛나게 써야할 사람들의 앞길을 막곤한다. 수백억의 재산을
대체 어디다 써야 할까. 서울역에 나가 한 시간만 광장에 서 있어
봐라. 그 길이 금방 보일거다. 꼭 노숙인에 국한되어 지껄이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기부한 돈이 단 돈 천 원이라도 그 돈이 값지게
써지길 바란다. 기부는 대학이 아니라, 바로 우리 바로 뒤에 감춰진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한다.
노숙인들이 우리와 다름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대학따위에 기부는 무슨 얼어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