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라고 했는데 책에는 대부분 슈호프라는 이름만이 등장한다. 이반은 이름 데니소비치는 부칭 그리고 슈호프가 바로 그의 성 그러니까 빼밀리 네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슈호프란 성을 가진 이반이라는 중년 남자의 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묘사한 책이다.
운이 유난히 좋았던 그 날, 슈호프는 다른
어느
수용소의 나날들 보다 행운이 따른 그 날을 묘사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마냥
기뻐해줄만은 없었다. 전쟁통에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 후 간신히 탈출해 자유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니 스탈린정부는 그에게 간첩 혐의를 돌려 강제 부역형을 선고해
버렸다.
순간 철 없는 어린 시절 내가 북한에 대해 배울 때
늘
빠짐없이 언급되던 아오지 탄광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중차대한
반국가적 행위를 저질렀기에 그런 오지에 부역형을 선고했던 것일까.
체제의
유지를
위해 권력을 쥔 자들은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된 역사관을 부박한
백성들어게
선전한다. 반국가적 반인민적 반인류적 등등. 국가는 이렇듯 인민들의 개개인을 보호하고
그들의
사회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력해야하는 1차적 의무감을 상실한 채, 혼자석
대적하기
힘든 거대한 집단 권력에 꼭두각시가 되어 힘 없는 인민들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그것은 비단 독재정권이 유지되던 과거 소련 공산정권이나
북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어떤 중년은 흉흉한
시절
도시거리에서 가벼운 말싸움을 한 이유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고
했다고
증언한다.
인권은 국가 권력자들의 기분이나 정책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몰수되고
외면당한다. 그것은 암울한 냉전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유유히 그 모습과
구태를
간직한채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아마도 솔제니친의 비교적 읽기 편한
이
고전이 작금의 시대에서도 사랑받는 이유는 그러한 불행한 과거가 지금 이른바
우주로
위성을 직접 쏘아 올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 첨단 시대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단순하고 유쾌한 슈호프의 일상으로 받아 들여져도 될
개인적
비극사가 더더욱 슬프고도 생동감 있게 다가 온다.